박인주 회화

박인주 회화


음지 꽃 

디지털 페인팅, reticule printing 600 x 600 mm, 2020 



저는 일상에서 쉬이 유리되는 감정의 극점들의 소용을 찾아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스무 살 때 기획하고 전시했던 첫 단체전 어린 병의 진술서에서는 여성 타자화에 대한 비유를 위성으로 끌어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어요. 아무리 환하게 피어나도 결국엔 위성화된 사념들이 자는 곳.. 척박한 불모지인데 꽃이 피기를 강요받는 곳이요. 

그건 여성으로서, 또 고통을 소재로 그림을 작업하는 작업자로서, 필연적으로 겪어왔던 일상의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처연한 작업이나 삶을 향한 투쟁으로 수많은 공감과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온전히 치유되거나 잘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밝게 웃고 있다고 해서 당사자가 처한 현실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음지에서 살아가니까요. 윗세대부터 대대로 내려와 생의 어두운 기저에 잠들어있다가 쇠약해졌을 때 어렵게 키워낸 아름다움을 잡아먹는 참혹함. 

우리와 우리의 주변에는 곁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것들과 싸워나가야 하는 운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우건 혹은 자신의 생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나가던 사람이건. 다들 그렇게 세습되는 불행 틈에서도 어렵게 피어나고 쓰러지다 힘들게 뿌리내린 사람들일 것입니다. 

다만 음지에서 피어나는 삶에는 기이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방향의 바람이 불면 한 곳으로 기꺼이 고개를 굽힐 사람들입니다. 연대라는 것이 대게 그렇듯 인격이 하나의 풍향을 타고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듯 하나의 반향이 불어닥칠 때마다 마음이 뿌리내린 곳은 달라도 

서로의 몸은 맞닿으며 씨를 퍼트릴 것입니다. 

음지에서 피어나 양지로, 세상의 모든 따뜻한 곳으로 퍼져나갈 때까지요. 

음지 꽃 

디지털 페인팅, reticule printing 600 x 600 mm, 2020 


나와 내 주변을 비롯하여, 무수한 여성들의 삶은 대체로 굉장히 복잡하다.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도 많은 불안과 요구, 의심, 아픔이 혼재해있다. 


유독 여성들이 예민하고 버겁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많은 이들은 여성의 감정적인 기질과 연약함을 원인으로 꼽곤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과 많은 형태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과 검열의 결과이다.


다점의 인물화에는 인터뷰이 혜린님이 여성으로서 인생을 살아내며 겪은 경험과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꾸밈 노동을 하며 거울 속 내 모습을 미워하고, 외모 강박에 시달리는 것. 늘 눈치를 살피고, 숨죽이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고, 거절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것.

많은 상황 속에서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물음을 매번 던지며 자꾸만 자신을 검열하는 것.

여성과 페미니스트에게만 들이밀어지는 엄격한 잣대 앞에서 살아가는 것.

옳다고 여기는 신념과, 현실의 인간관계 사이의 괴리감에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는 것.


이와 같이 자기검열이 빚어낸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물'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나타내고자 했다. 각각의 감상자가 여러 해석을 덧입힐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이다. 각자의 감각과 경험을 비추어 곱씹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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